소설 13

사르트르를 등지고

밀려오는 배신감은 체내에서 맴돌며 터져나올 구멍도 없이 마음을 갉아먹고 있었다.서럽게 울며 미친듯이 소리친다 해도 편의점에서 사다 입에 털어넣는 소염진통제처럼 흔한 대증요법도 되지 못한다. 다들 그렇게 실연을 잊어간다고들 하지만 결국 모두가 마지막에 삼키고 마는 투박한 알약의 이름은 시간일 테니까.각지의 언어로 노래하고 시대를 넘어 고전과 현대를 잇는 연속된 플롯 속에서 읽어냈던 사랑에 대한 이야기에서 나는 참 많은 걸 배웠지만 고작 한 연애의 끝자락에서는 너무나 연약하고 바보처럼 행동했다. 아무래도 쉬이 잊고 털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이렇게나 가볍게 떠나버리다니. 지금껏 함께 했던 시간은 무엇이었을까. 함께 웃고 많이 싸우고 가끔 울었던 기억들. 한 줌의 바보같은 먼지로 날아가버릴 추억이었다...

소설/습작 2019.02.15

갇히다 ('15. 1. 31 ~ 2. 1 작성)

갇히다 문을 두드려보았지만 밖에는 아무도 없는지 반응이 없었다. 방안은 어두웠지만 아주 캄캄하지는 않았다. 문틈 사이로 문밖의 빛이 새어들었다. 구석진 곳은 그림자가 짙어 직접 벽에 손을 대고 한 바퀴를 빙 돌아서야 방이 생각보다도 더 작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갇혔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그렇다는 것쯤은 판단하기 어렵지 않았다. 혹시나 몰라 문고리를 더듬어 돌려보았지만 문은 잠겨있었다. 문에서 두 걸음 떨어져서 바닥에 앉았다. 융단이 깔려 있는지 푹신푹신했다. 영영 나갈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니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차분한 정적이 이곳에는 있었다. 그래서 역으로 편안하기도 했다. 이제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

소설/습작 2015.06.08

「」 는 이름이 없다

「」 는 이름이 없다 이름이 없어서 그가 불편했던 점은 다른 누구에게 자신을 소개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가 유래없는 미성이라고 생각해 왔고 그런 멋진 목소리를 칭찬받고 싶었지만 남들 앞에만 서면 발끝이 아려왔다. 찌릿하고 전류에 닿은 듯 오른발 새끼발가락부터 왼발 새끼발가락까지 열 차례 경련이 나는 것이었다. 고통은 심하지 않지만 예고하지 않은 고통이다보니 그로서는 깜짝 놀랄 일이었다. 무심코 그는 온몸을 움츠리고 만다. 그리고 이 때 그는 상대에게 말을 걸 타이밍을 잃어버리고는 했다.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 삭이기는 그로선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는 저 멀리서 온 작은 유성이었다. 지구에 와서 첫 몇 개월은 누군가와 단 한마디도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그의 외견이 얼핏 보면 ..

소설/습작 2015.05.31